★ 진화론vs창조론 법적투쟁의 역사 ★ 세상을 바꾼 재판 이야기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기 전까지는 창조론이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지배적인 이론이었어요.
다윈 이후 진화론이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이론으로 자리 잡았고,
과학이 발전할수록 진화론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지배적인 이론이 되었어요,
하지만, 진화론도 아직까지 풀지 못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100% 완벽한 이론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그런 까닭에 현재까지 진화론과 창조론은 여전히 논쟁 중에 있어요.
1980년대 이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지적 설계'라고 불리는 이 이론은 진화론과 창조론을 연결할 수 있는 이론으로 지지 받았어요.
'지적 설계' 이론은 진화론의 기본 개념을 인정하면서,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우연의 결과 대신 초자연적인 설계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는 이론이에요.
즉, 진화론에서 증명해 내지 못한 부분을 창조주의 의도라고 보는 관점이지요.
하지만 적어도 미국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확률이 커요.
창조론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진화론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한,
또 진화론이 100% 완벽한 이론이라는 것이 증명되지 못하는 한 말이에요.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이후 진화론을 옹호하는 과학자들과
창조론을 옹호하는 종교계 사람들 간에 많은 논쟁이 벌어졌어요.
첫번째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격렬한 논쟁은 1860년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 강당에서 있었어요.
창조론 옹호론자인 영국 국교회의 새뮤얼 윌버포스 주교는
진화론 지지자인 생물학자 헉슬리에게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생각은 조부쪽에서 온 것인가?
조모 쪽에서 온 것인가?”
라고 물으며 조롱했어요.
그러자 헉슬리는 월버포스에게
"나는 원숭이를 조상으로 둔 것에 대해서는 부끄럽지 않지만 진실을 숨기려는 인물을 알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오"
라고 말하며 응수했어요.
윌버포스와 헉슬리의 논쟁이 있고난 뒤 65년이 지나 미국에서는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세기의 논쟁이 벌어졌어요.
미국에서 일어난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법적 투쟁은 지금까지 크게 세 번 있었어요.
첫 번째 법적 투쟁은 1925년에 벌어진 일명 '스코프스 원숭이 재판'이고,
두 번째 법적 투쟁은 1928년 아칸소 주에서 일어났고,
세 번째 법적 투쟁은 1981년 루이지애나 주에서 있었던 생물 교사 존 아길라드와 루이지애나 주지사 에드윈 에드워즈 간의 소송이에요.
‘스코프스 원숭이 재판’은 단순히 학자들과 종교인들 간의 토론 논쟁이 아니라 법정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의 언론이 집중했고, 세기의 재판이라 불리었어요.
1925년 미국 테네시 주에 있는 작은 도시 데이턴에서
고등학교 생물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존 스코프스는 수업 중에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되었어요.
스코프스가 법정에 서게 된 이유는 몇 개월 전에 테네시 주 의회에서 제정한 '버틀러 법령'을 위반했기 때문이에요.
당시 주 하원의원이며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버틀러의 이름을 딴 이 법령은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부정하고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어요.
버틀러 법령은 기독교 유권자들의 표를 많이 얻기 위해 정치인들이 억지로 통과시킨 법이었기 때문에
실제 이 법이 적용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전미 인권연합'이라는 단체에서 테네시 주에서 통과시킨 버틀러 법령을 알게 되면서 사건은 매우 이상하게 흘러갔어요.
‘전미 인권연합’은 이 법령이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일부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을 세웠어요.
‘전미인권연합’은 우선 이 법령을 위반할 교사를 찾았는데,
스코프스가 이에 응하게 되었어요.
스코프스는 수업 시간에 일부러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쳤고,
검찰은 스코프스를 법령 위반으로 기소했어요.
그런데 이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스코프스 소송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소송이 되어버렸어요.
이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 데에는 양쪽 대리인의 명성도 큰 몫을 담당했어요.
스코프스 쪽의 대리인은 당시 인권 변호사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던 클래런스 대로우였고,
검찰 쪽 대리인은 연방 하원의원 출신이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세 번이나 선출되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었어요.
이 재판은 풍자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였던 멘켄이 재판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이교도 스코프스 원숭이 재판'이라고 언급한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원숭이 재판’이라 불리게 되었어요.
법정에서 양쪽 대리인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판결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어요.
배심원 12명 중 11명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프스 측이 이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간 것은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 법령의 문제점을 알리려는 목적 때문이었어요.
예상대로 1심 법원은 검찰 쪽의 손을 들어주었고,
스코프스는 법정 최저 금액인 100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어요.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벌금을 내겠다고 자원했고,
스코프스 측은 사건을 2심 법원 및 연방 대법원으로 끌고 가려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런데 2심에서 파기 환송되어 연방대법원까지는 올라가지 못했어요.
하지만 스코프스 원숭이 재판은 본래 목적대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버틀러 법령의 문제점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어요.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두 번째 법적 투쟁은 1928년 아칸소 주에서 있었어요.
당시 아칸소 주에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내용이 담긴 교과서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었는데,
교육자들은 이 법률이 헌법을 위반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어요.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대법원에서는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아칸소 주의 법률은 특정 종교를 보호하려
는 목적이 있다고 판단하여 만장일치로 위헌이라고 판결했어요.
비록 연방대법원까지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2005년 조지아 주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논쟁이 다시 한 번 있었어요.
조지아 주의 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생물학 교과서에 진화론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내용의 경고 스티커를 부착하도록 했어요.
그러자 진화론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조지아 주 법원은 스티커 부착 행위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판결하여 이후 모든 스티커는 제거되었어요.
이처럼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논쟁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계속해서 일어날 확률이 높아요.
왜냐하면 많은 미국인들이 진화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 까지의 이야기는 '세상을 바꾼 재판 이야기'라는 책의 일부 내용으로 소개해 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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